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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저도 굳이 보편적..
by 음울한어둠 at 12/20 너네들은 가난하기때문에.. by 닉네임 at 09/05 그렇군요.. 저는 직장에.. by 루리도 at 05/17 저 사건은 모 S 클럽사.. by 음울한어둠 at 05/17 아뇨; 그 사건하고는 상.. by 음울한어둠 at 05/16 그러고보니, 이글루스쪽.. by 루리도 at 05/08 미스트는 히로인 이름인.. by 음 at 05/03 파일좀 공유 좀.... by 끄네끼 at 09/22 음.. 제가 이사가서 이 .. by 음울한어둠 at 06/15 위니에서 직접받았네요.... by Sii at 06/15 |
내가 싫어하던 어른의 모습, 싫어하던 인간들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런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orz 내가 못 하는 것이 있듯, 상대방에게도 할 수 없는 일과 한계는 엄연히 존재할 것인데... 나의 지식과 잣대로 상대방의 한계를 재단하며 상대방에게 나에게 맞춰줄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_-; 아.. 슬로우 슬로우.. 예전에는 천천히 여유롭게 사는 법을 알았던 것같았는데, 이제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주변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든 건지 몰라도 갑자기 조급해진 느낌이다.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시간이 없어' '빨리빨리' '망했다' 요 세 단어... 휴우..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비판적 지지론 혹은 사표론 논리에 의하면 사표를 안 만들려고 투표를 하려면 당선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당(한나라당)에 투표하는 게 가장 맞는듯 싶습니다...;;
대체 어떻게 저런 논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가장 이상적인 투표는 당보다 사람을 보고 뽑는건데 말이죠. 그런데, 난 후보들을 잘 모르잖아..? 그러니까 난 아마 안 될거야.... orz 10여 년동안 드나들며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사귀고, 정이 든 커뮤니티가 하나 있었다. 최근 어떤 사건으로 인해, 박스 및 홈페이지는 폐쇄되었고 커뮤니티도 붕괴직전에 있다. 10년이라면 인생의 1/6~1/7이 되는 기간,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다. 휴. 한 명의 생각없는, 철없는 행동이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던 일을, 커뮤니티의 분열로까지 몰아넣는 것을 보며, 착찹한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이다. 애들 점심 굶는다고 모든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지원하자니, 너무 비효율적이다. 4대강이 삽질이라고, 교육정책도 삽질하자는건가;; 모든 정책에 삽질만 해대면, 남는건 국가재정파탄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굶는 애들은 5~10% 정도 일텐데, 5~10%를 위해서 90~95%의 아이들까지 무료로 밥을 주자는 얘기인가?;; 우리 나라가 무슨 자본이 남아도는 선진국도 아니고..;; 그 돈으로 차라리 저소득가정이나 결손가정을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물론 삥땅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그걸 직접 돈으로 주지 않고 상품권처럼 발행하여 식료품만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은 어떨까? 그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선 지원 후 (식료품구입)영수증 첨부방식도 괜찮을 듯 싶다. 점심 굶는 애들 아침, 저녁까지 챙겨줄 수 있으니 1석 2조 아닌가? 이 무상급식이 국민들에게 지지받는 이유는 자신들 혹은 자신의 아이들이 90~95%에 해당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말 5~10%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내 생각이 맞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건가? 자유로운 아나키스트 | 자유, 깨달음, 자연주의, 생명 "세상을 위해 내 몸에 터럭 하나라도 내놓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타입. 질서니 법칙이니 하는 말에 근본적인 거부감이 있다. 고정된 가치 기준이 없는 당신의 사유는 탱탱볼 마냥 어디로 튈지 모른다, 주의할 것은 한가지! 어떤 진리도, 근본 법칙도, 권력도, 국가도 몽땅 업수이 여기다 보니 '허무주의'에 빠져 몸을 버릴 수 있다. 모든 기성질서를 내려놓고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법을 익혀라! 이 타입의 동양사상가는? = 혜능, 양주, 왕충, 범진 『철학 vs 철학』에서는? 9장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한가? 양주와 한비자 11장 모든 일에는 절대적인 필연성이 존재하는가? 동중서와 왕충 12장 정신은 영원한 것인가? 혜원과 범신 14장 수양하려는 생각도 집착일 수 있을까? 신수와 혜능 혜능육조 혜능이라 불리는 이 사람. 무려 1300년 전에 살았던 불교계의 대스타다. 그런데 '육조'는 왜 '육조'인 것일까? 그것은 그가 속했던 교단인 '선종'의 6대 조사라는 의미이다. 불교에는 크게 세가지 교파가 있는데, 율종, 교종, 선종이 그것이다. 율종은 계율을 중시하고, 교종은 자기 수양[참선]을 중시한다. 마지막으로 선종은 혜慧라는 글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혜', 지적인 통찰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율종은 우리에게는 약간 낯설 수도 있는 것이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유학의 영향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아마도 민중들에겐 '계율'피로증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율종이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고 당나라 때까지 교종과 선종의 양립체제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혜능은 선종이 교종보다도 훨씬 더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에 활동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돈오)를 강조하고, 깊은 산 속에서 선문답을 나누는 선종의 오랜 전통에 비춰볼 때, 그가 이 부류로 분류된 것은 꽤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사상적으로도 그는 '마음'의 실체성을 부정하였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신수의 주장에, 없는 마음을 어떻게 닦느냐며 응수할 정도로 고착된 생각, 정주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관련된 책]
양주기원전 400년, 동양철학사에서 흔히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 불리는 시기에 활동한 철학자다. 『맹자』 <진심>盡心편에 그의 사상의 일면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글귀가 전해진다. "양주 선생은 위아爲我의 입장을 취한다. 자기 몸의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아는 일을 하지 않는다."가 바로 그것인데, 사실 맹자는 비난조로 적었지만, 우리까지 그러한 태도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어떤 주장이란 늘 다양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전란으로 천하가 황폐해지고, 백성은 나날이 굶주리던 시기에 양주는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고 명예, 재산, 이념 등으로 자신의 몸을 얽어매는 당대의 각종 사상과 정치적 규칙에 반대하면서 위아의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양주가 보기에는 천하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외물外物(부, 명예, 권력)에 휘둘리기 때문에 전쟁이 끊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에 비춰 보자면, 진정 중요한 것은 사람이 각자의 자유에 따라 각자의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 국가, 권력, 명예, 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 부류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양주가 가장 급진적이지 않을까 싶다. [관련된 책] ※ 양주가 직접 저술한 책은 전해지지 않으나, 『열자』『맹자』 등에 그가 가진 사상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왕충중국 한나라 시대의 유명한 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고향마을을 주름잡는 천재였다고 한다. 8살 때는 논어와 서경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었고, 15세 때에는 당대의 메트로폴리스 낙양으로 가서 유학의 경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했던 성장환경 덕에 급진적이고 과격한 정책들을 내는 그는 결코 중용된 적이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다행일 수도 있는 것이, 중용받지 못하다보니 더욱 공부에 매진하였고,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대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상은 유물론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인간은 자연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도 관철시킬 수도 없으며 오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사유에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무신론적인 성격도 발견된다. 자연이 객관적 존재이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인간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때 용龍의 자손인 황제의 신성도 별것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논리에 당대 지배층이 식겁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 천재이면서 반골인 경우, 그리고 반골을 반골이 되게끔 만드는 경우가 바로 왕충의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의! KOEI사의 유명한 게임 삼국지에 나오는 '왕충'과는 다른 인물임.) [관련된 책]
범진인간이 죽은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범진은 생명이란 몸과 마음의 결합체로 보았다. 그리곤 날카로움과 칼날의 비유를 들어 칼날이 사라진다면, 날카로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몸이 없어진다면, 영혼 또한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400년경 활동했던 사람으로 영혼불멸론을 주장했던 혜원에 맞서 신멸론(神滅論)을 주장한 사람이다. "죽은 뒤에 영혼이 어찌되든 뭔 상관이람" 할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주장이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조건에서 가령 죽은 뒤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유교적 전통의 '제사'는 결코 의미 있는 짓이 못된다. 다시 말해 산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에도 무수한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관련된 책]
감성적인 문필가 타입 | 센스, 감성, 열정 동물적 감각+논리적 이성까지 겸비한 당신은 욕심쟁이, 후후훗! 감각과 동시에 ‘쓰임’까지 고려하는 섬세함을 가진 당신. 동물적 감각을 중시하지만, 이 감각은 명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좋아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센스쟁이 타입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동물적 감각과 함께 빛나는 통찰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디 가서 미움 사기 십상인 타입+_+? 현대의 직업군에서 꼽자면 ‘디자이너’ 혹은 ‘설계자’에 가까운 이 부류의 철학자는? = 흄, 들뢰즈, 마르크스, 아감벤 『철학 vs 철학』에서는? 8장 어느 경우에 인간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흄과 칸트 15장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헤겔과 맑스 26장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데리다와 들뢰즈 28장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슈미트와 아감벤 흄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동시에 유명한 회의주의자.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흄이 애덤 스미스의 절친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그가 '회의주의자'가 된 이유는 '시니컬'하거나 '허무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단순히 광대하게 펼쳐진 우주 앞에서 지적 겸손함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일 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살던 당대에는 초월적인 신 없이 평화와 행복을 상상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주 유쾌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죽어 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성'에 꽤나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 적도 있었는데, 결국엔 '이교도'라거나, '무신론자', '회의주의자'(이건 사실 꽤 모욕적인 표현이다)라는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후대에 칸트에 의해 정직한 사유가로 재평가되고, 들뢰즈에 의해 감각의 위대함을 보여 준 철학자로 높이 평가받았으니, 니체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야 다시 태어난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련된 책] 맑스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상가를 딱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99%는 이 사람을 꼽을 듯. 적을 구워 먹어 버릴 것 같은 열정으로 글을 써 댔던 이 사람은 '천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말 놀랄 만큼 면밀한 분석을 수행했으면서도 문학적인 감수성은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는다. 맑스의 책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꼼꼼하고 정밀한 분석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걸 가지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역사 전체를 살펴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맑스의 일상은 가끔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가장 수입이 적을 때조차 당대의 중산층에 상응하는 정도였는데, 지출의 무능력과 사치로 인해 먼저 죽은 딸의 관조차 장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생활에서도 유능한 '천재'란 정말 없는 것인가? [관련된 책]
들뢰즈"그는 너무나 굳센 나머지 실망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 허무주의적인 세기말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질병과 죽음에도 역시. 왜 나는 과거에 그에 대해서 떠벌렸던가? 그는 웃었다.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여기 있다. 슬퍼하는 건 너야, 멍청아. 그가 말한다." (들뢰즈의 죽음 이후 『르몽드』에 실린 리오타르의 추도문) 들뢰즈에 대해 그 자신의 발언을 제외하고, 이렇게나 그와 그의 사유를 잘 표현한 말이 있었던가? 긍정적 삶의 대가였던 들뢰즈는 그 어떤 '부정적인 것의 긍정성'도 용납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것은 그냥 부정적인 것일뿐 그로부터 긍정적인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좋아하는 '반성'을 엄청나게 경멸한다. 반성은 우리를 위축시킬 뿐이다! 들뢰즈는 '글쓰기' 그 자체에 관해서도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보통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형식의 글쓰기 실험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이해'할 수 없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깊은 밤 고원 위에서 별 밭을 우러르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을 때 그의 저서 중 아무 곳이나 펴 놓고 읽어 보길 바란다. 말들의 미로 속에서 오바이트하거나, 오만가지로 펼쳐지는 생각의 잔치를 볼 수 있으리라! [관련된 책]
아감벤'벌거벗은 사람들', 오직 생명 그 자체만 남은 사람들.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개념들을 현대사회를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똑똑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하나의 사태를 다른 것들과 연결하는 통합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이 철학자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호모 사케르'를 현대로 소환함으로써, 현재의 '호모 사케르'를 드러낸다. 방랑하는 사람들, 자격 없고 소속 없는 사람들을 통해 자유와 대안까지 그려 볼 수 있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철학vs철학』이나, 아감벤의 다른 저서를 보시길! 어쨌든 우리 삶에서 '정치'를 사고할 때 주목해야 할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 [관련된 책] ---------------------------------------------------------------------------------------------------------------- 아나키스트는, 내 삶의 목적의 본질이 자유의 추구라는 점에서 맞을 지도 모르겠는데, 감성적인 문필가타입이라니... -_-; 나는 자연과학자인데...? 물론, 인문사회과학도 포함하는 학문이긴 하지만..; 미스트버전이라던데.. 미스트가 누군지...? 게임을 해봤어야 알지 -_-;; 미즈키 나나 버전도 있나..? 찾기 귀찮음의 압박;;
쩝.. 다시 이 이글루로 쫓겨왔네요(?)
그냥 심심하니 예전에 올렸던 노래들이나 다시 올려봐야겠습니다;; 요즘에 새로 듣는 노래도 없고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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